西遊記, a very long journey to the west by Dongjun Shin 『서유기』 또는 삶의 아주 먼 여정, 신동준 그림책 서유기전 멀고 먼 서역으로의 고단한 여정을 마주한다. 그림책 『서유기』는 이 여정을 병풍처럼 길게 펼치는 책이다. 원전 『서유기』는 진리를 찾아 천축국(天竺國)으로 떠나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등 다섯 명의 일행이 겪는 81가지 고난으로 널리 알려진 책이다. 그림책 『서유기』는 원전의 고난을 81쪽의 연결된 다중 시점적인 그림과 사진으로 가져가지만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 형식은 완전히 폐기한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낯설다. 책에서 우리가 처음 지각하는 것은 첩첩이 쌓여있는 다양한 패턴들과 상징들이다. 이것들은 대략 “마을과 숲, 얼어붙은 높은 산, 불타는 사막과 으리으리한 궁전”등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이미지의 단편들로 그림책 『서유기』의 여정을 이루는 것이다. 이미지들은 버스의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처럼 즉각적으로 이어지지만 분명한 인과관계나 구체적인 정보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세심하게 주의한다면 나열된 그림 이미지에 상자와 공이 쌓인 사진이 교차 편집되며, 그 가운데 손오공 일행이 이따금씩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행은 상자들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이동하거나 기어 올라가는데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강렬한 이미지들은 하나의 배경이면서 그들이 극복하거나 맞서야하는 어떤 대상이기도 하다. 손오공 등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사진의 초점은 그들이 아닌 주로 상자의 그림들에 맞춰져 있다. 상자 위에 그려진 강렬한 이미지 덕분에 모든 등장인물들은 배경으로부터도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으며, 삼장법사의 경우 책 전체에 걸쳐 그 모습이 완전하게 보이는 적도 없다. 그림책 『서유기』의 서사를 장악하는 것은 이미지들이다. 전통적 서사의 주인공들은 오히려 그 서사의 초점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원전 『서유기』의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모든 시도는 무력하다. 혼란과 이해의 어려움은 이러한 측면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이 책을 읽어낼 새로운 방식, 이미지에 대한 자신의 내적 서사를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은 집중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림책 『서유기』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각각의 사진과 상징들은 중국과 사막을 지나 산을 넘고 인도에 다다르기까지, 또는 시간과 공간 사이를 꿰뚫고 종횡 무진하는 멀고 먼 여정을 예시한다. 이미지들은 관찰되고 사유된 세계의 조각들이며, “수많은 사건과 장면, 그로 인해 겪게 되는 감정들”을 함축하는 것이다. 세계의 이미지를 배열하는 방식에는 오브제로서의 책의 구조가 긴밀히 관여하고 있다. 병풍처럼 펼쳐지는 책의 설계는 종이의 물질성을 통해 층층히 쌓인 상자들과 이미지를 쌓아 올리고 펼친다. 이미지들의 중첩과 구조적 전개를 통해 재구축되는 것은 세계다. 펼쳐진 세계에 의지하여 책은 멀고 먼 여정에 대한 서사의 가상적 외연을 감각 지각적이고 다시점적으로 확장한다. 따라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식된 세계, 신동준이 바라보는 인간세계다. 재구축된 세계에서 시공간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책은 그저 하나의 매개로서 세계의 존재방식을 드러낼 뿐이다. 『서유기』에서 우리는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는 광활한 세계로 떠난다. 우리 삶의 여정은 신동준이 내세우는 실질적 주인공이다. 이것은 “시련과 설렘과 실수와 두려움과 후회로 겹겹이 쌓여있”고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먼 길을 돌아 삼장법사 일행은 인도에 도착하고, 붓다를 만나 법(法)을 얻는다. 14년에 걸친 그들의 여정은 완성된 것일까?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10만8천리 길의 여행을 주저 없이 떠났던 이 여정의 마지막은 떠났던 그 장소로 귀환하는 여정의 시작에 그대로 포개진다. 늘 그렇듯이 그들은 어떤 진리도 얻은 바 없이 그렇지만 찰나의 순간을 ‘있는 그대로’ 만나면서 광활한 세계를 이루는 그 길을 다시 떠날 것이다. 삶의 온전함은 그 순간에 있다. 정현주, 독립큐레이터, 철학박사 전시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