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또는 굶주림 – 일종의 경계. 또한 당신에게 하는 질문.” 나는 지난 6월 25-27일에 도쿠멘타 14를 보기 위해 독일의 카셀을 방문했다. 카셀 도큐멘타 14는 정치적 발언의 난해함만으로도 악명이 높다. 게다가 이번 전시의 규모는 2박3일로는 감당이 안될 만큼 컸다. 전시 오프닝 때 다녀온 친구(그녀는 도쿠멘타 12의 큐레이터였다)의 조언으로 나는 노에 갤러리와 노에 노에 갤러리, 도쿠멘타 할레를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볼 수 있었다. 이 글의 구체적인 목적은 카셀 도쿠멘타 14의 예술작품들에 대한 하나의 개념적 지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개념지도가 카셀 도쿠멘타를 방문하려는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카셀 도쿠멘타 14의 예술 디렉터 애덤 심칙(A. Szymczyk)은 카셀 도쿠멘타를 “매 회마다 자신의 시대를 반영하고 목격하고 치열하게 논평하는” 양심으로 정의한다. 1955년 작가 아르놀트 보데(A. Bode)가 이끈 제1회 도쿠멘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었던 카셀에서 나치정권에서 금지되었던 퇴폐예술(deganerate art)를 정치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사실상 이와 같은 성격을 결정지었다. 늘 그랬듯이 이번 도쿠멘타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이슈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동시에 관람자로 하여금 깨어있는 사고를 요구하는 접근을 강조한다. 프리드리히 광장은 독일 중부의 작은 도시 카셀의 중심이면서 프리데리치아눔 메인 전시장과 도쿠멘타 할레, 노에 갤러리가 위치한 도쿠멘타14의 중심 공간이다. 여기에는 이 시대와 지난 시대에 금지된 전 세계의 책들로 구축된 거대한 신전이 있다. 금지된 책들 중에는 히틀러에 의해서 금지된 책들도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시대의 금서인 히틀러의 『나의 투쟁』도 포함된다. 더욱이 광장을 중심으로 배치된 주 전시장의 전시들은 나치의 문화적 약탈과 유럽인의 인종우월주의와 식민지화의 문제, 환경문제와 난민, 이주라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난제들에 대한 날선 발언으로 가득하다. 그 광장에는 유럽의 모든 문제들이 총집합한 듯 혼란스럽다. 그런데 그 모든 정치적 발언들 가운데 아테네가 있다. 파르테논 신전과 금지된 서적들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광장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카셀에 위치한 ‘아테네’ 또는 아테네에 위치한 ‘카셀’이다. 개념적으로 우리는 두 개의 장소와 하나의 도쿠멘타, 즉 이중의 장소성과 문화적 코드로서 위치한 도쿠멘타를 이해한다. 이것은 ‘정치적 국경’에 대한 대화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도쿠멘타14의 시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뿐이다. “아테네로부터 배운다”는 주제는 다양한 정치적 발언에 대한 어떤 시점을 사실상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발언들을 하나로 꿰뚫는 의미의 맥락을 구성하지 못한다. 내가 카셀에서 발견한 아테네와 연관된 역사적이고 장소적인 매개란 2차 대전 당시 아테네에서 이루어진 나치의 미술품 약탈과 카셀의 오래된 조각, 헤라클레스일 뿐이다. 가디언지가 지적하듯이 도쿠멘타 14는 “배움”을 키워드로 꺼내들었지만 배움이라는 우리의 일상을 카셀과 아테네라는 두 도시와 연관하여 삶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 도시의 하나의 도쿠멘타란 문화자본의 확장처럼 이해될 여지가 생긴다. 아테네는 전시의 관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혼란을 더한다. 게다가 이것은 예술감독의 “의도된 혼란”이라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노에 갤러리는 “역사적 의식의 일차적 장소”다. 이곳의 전시는 이 건물이 갖는 상징적 의미에 주목하면서 많은 작품들이 그 의미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도쿠멘타 14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 박물관은 1877년 독일 제국의 초기시기와 맞물려 완성되는데 특히 이 건물에 있는 여덟 국가를 대표하는 대리석 인물상, Länderfiguren은 당시 전통적 예술국가로 간주되던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이태리, 프랑스,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을 비유하는 8개의 여성 조각들이다. 애덤 심칙은 이 조각들이 함축하는 “근대 독일의 출현과 민족주의와 제도적 문화적 정책”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식민주의와 나찌즘과 전쟁, 난민, 매춘과 같은 사회적 학대, 생태문제로 확장시킨다. 전시는 예술사적으로나 그 의도에서 상반되는 작품들을 나열하고 그 시대적이고 맥락적인 함축과 역설을 관람객 앞에 던져 놓는 방식을 취한다. 예를 들어 노에 갤러리 1층에는 8개의 대리석상, Länderfiguren과 그 당시 유럽의 노예무역과 식민정책에 의해서 멸망한 아프리카의 베닌 왕국의 Benin Bronzes 3점이 나란히 이웃한다. 이와 같은 의도적 배치(juxtaposition)는 우리로 하여금 근원적 양상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되묻게끔 도발한다. 즉 아프리카의 한 부족국가의 멸망은 같은 시대의 유럽의 근대 국가의 출현과 민족적이고 문화적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세계관과 어떤 방식으로 맞물려 있는지를 추론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유럽과 백인 중심의 모든 역사관이 다른 민족에 대한 수많은 폭력을 은폐하고 조작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노에 갤러리의 전시는 “더 큰 역사적 은폐와 역사적 기억의 조작”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고 나아가 “전쟁과 나찌 약탈의 정신적 트라우마에 대한 예술의 관계, 식민지 정복의 역사에 대한 박물관의 관계, 약탈과 소유와 불법점유의 문제, 그리고 경제 영역에서 예술이 관여된 모든 소비적 도전에 대한 질문”들의 근본적 재구성을 시도하는 것이다. 질문의 근본적인 재구성은 노에 갤러리의 역사적 배경을 관통해 도쿠멘타 14 전체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근대 국가와 민족의 탄생이 약탈과 폭력을 수반하는 현상의 근원에 대한 탐구다. 탐구는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우리 시대의 모습으로 나아가는데 약탈과 폭력은 동시대의 자본주의적 예술계와도 다시 환경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우리는 스스로 질문할 수밖에 없다. 왜 우리는 이와 같은 분쟁과 약탈과 폭력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가? 동시에 왜 우리는 정치적으로 끊임없이 저 양상들을 잘못되었다고 논쟁하고 환기시키는가? 애덤 심칙은 ‘굶주림(hunger)’에 주목한다. 그에게 있어 굶주림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노에 갤러리 3층에서는 느닷없이 고행으로 야윈 붓다의 두상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그 옆방에는 18세기 인도 벵골지방을 휩쓸었던 참혹한 기아의 기록들이 배치되어 있다. 벵골지방 주민들의 굶주림은 그들로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불가피한 비극이었다면 붓다의 굶주림은 그가 정신적 각성을 갈구하며 선택한 자발적 고행이다. 이것은 육체적 굶주림과 언어적 굶주림이다. 우리는 유럽이 일으킨 수많은 약탈과 분쟁을 거쳐 갑자기 두 종류의 굶주림을 마주한다. 이 둘을 매개하는 것은 바로 동일한 우리의 몸이다. 우리는 불가피한 모든 참혹의 당사자이면서 그 참혹을 바라보고 기록하고 저항하는 발화자다. 도쿠멘타 14의 언어적 굶주림이란 전적으로 참여한 모든 예술가들의 것이다. “그들의 굶주림은 저항의 한 형태로 나타난다.” 저항은 모든 예술적 발언을 낳는다. 저 발언들은 전시를 진지하게 관람하는 누군가를 진저리치며 스스로 깨어있도록 하기 위한 몸짓이며 발화다. “아테네로부터 배운다”란 주제는 분명 의도된 것일 것이다. 나는 사실 애덤 심칙의 “굶주림”의 개념지도 만으로도 도쿠멘타 14는 충분히 관람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깨어있기 위해서라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아테네는 너무 멀다. [참조] 도쿠멘타14 매거진 “남쪽”, Issue #8 [documenta 14 #3]. http://www.documenta14.de/en/south/https://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17/may/14/documenta-14-athens-german-art-extravaganzahttp://www.documenta14.de/en/venues/21726/neue-galer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