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여행, 광주의 소리 풍경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는 보통 소리 환경을 의미하는 용어다. 이 낱말은 우리가 소리를 하나의 환경적 요소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인식의 청각패턴과 언어 및 음악의 구조를 분석하기 위해 사용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우리에게 소리가 의미로 작동하는 방식을 생각하게끔 만드는 용어다.1 우리는 소리가 변할 때 우리의 인식에 어떤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가 어떻게 관찰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예술로서의 소리란 막연하게 흩어져 있는 대상들 또는 소리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이다. 이것은 동시에 개인의 시적 시선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는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소리 환경, 즉 음의 풍경에 주목한다. 전시 “광주로의 여행”은 재즈 뮤지션 최성호와 미디어 아티스트 전석환이 광주에 대한 기억을 표현하는 소리 풍경들이다. 지난 이월, 두 사람은 해 기울어진 오후, 느즈막히 광주에 도착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그 다음날 밤 서울로 되돌아갔다. 짧은 여행 후 그들은 광주에 대한 기억을 작업으로 만들고 싶다고 내게 알려왔다. 최성호는 즉흥연주자다. 즉흥연주(improvisation)란 연주자가 악보에 의존하지 않고 즉흥적 발상을 쫓아 자유롭게 연주하는 창작행위다. 엄밀히 말해서 즉흥은 음악가만의 고유한 행위가 아니다. 우리도 즉흥연주의 형태를 일상대화에서 행한다. 예컨대 우리가 대화를 할 때 낱말과 문법적 규칙은 우리가 말하고자하는 어떤 것들을 의미로 드러내면서 그 배경에 숨어있다.2 이 즉각적 창조행위는 우리에게 마치 숨 쉬는 것과 같다. 이것이 매일매일 우리 삶에서 벌어지지만 우리는 너무나 평범하게 느껴져서 이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그렇지만 예술가들에게 이 행위는 사소한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어떤 것들을 명확하게 하기위해 창조행위는 보다 정교한 방식으로, 때로 낯선 방식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번 전시에서 최성호는 광주에 대한 기억을 쫒아 연주한다. 518과 소쇄원과 숙취를 말하는 그의 전자기타 음들은 우리에게 익숙한듯하면서도 모호하다. 그는 광주를 낯설고 이상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 “기억은 시간에 따라 변하고, 왜곡되고, 편집되는” 어떤 것이다. 그는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과정”이란 기승전결의 일관된 논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선 법칙이 적용되기도 어렵고 예측할 수도 없다. 그가 만드는 음의 풍경은 상상적 비약을 통해 수수께끼처럼 매번 다른 인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즉흥적 음의 중심에는 산책길이 조용했지라고 느꼈던 “일상 속의 지극히 평범한 감정”들이 있다. 소리의 움직임 속에서 일상의 사소함에 대한 최성호의 깊은 시선을 마주칠 때, 우리는 그가 만드는 선율에 공명한다. 전석환은 “전자기기 기반의 기술을 관객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매체로 활용하는 작가”다. 예를 들어 그의 사이버 ‘연못’(퐁당, 2009-2012)은 만지고 듣고 보는 감각을 통해 사람들의 다양한 인지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그 인지 반응에 대한 컴퓨터의 신호 피드백을 통해 사람들은 가상 생태계와 관계를 맺고 교감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매체에 대한 그의 실험적 접근은 이번 전시에서도 선명하다. 작품 “귀를 기울이면(2017)”은 “서울에서 광주까지의 시공간 자취에 따른 작가의 기억”을 “심적 지도(Mental Map)”로 표상하고 여기에 가장 단순하게 스피커의 기본 원리로 경험되는 소리 장치를 심어 놓은 캔버스 작업이다. 관객은 그의 기억 회로 안에서 자석을 가지고 미묘한 소리를 만드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캔버스에서 소리를 만드는 행위란 그 자체로 작가가 관객과 조우하는 접점이다. 이 접점에서 그는 나타났다 소멸하는 어떤 소리 흔적, 찰라적 순간에 집중한다. 이때 소리행위는 전석환의 음의 풍경이고 최소한의 심리적 기표이지만 음의 풍경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는 그의 세계에 접속하는 자, 즉 그 순간, 자석을 가지고 소리를 만들고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마주치는 것은 소리 그 자체에 대한 전석환의 질문이다. 두 예술가는 광주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최성호는 즉흥연주라는 방식으로 전석환은 매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들이 소리를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방식은 추상적이다. 추상성은 바로 그들이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을 서로 다른 시선으로 설명하면서 생겨나는 것이고 광주라는 하나의 장소가 심리적 지도로 표상되는 것이다. 이때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일상도 무의식적 창조행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따뜻하고 심심한 소리의 움직임과 만나 그들의 심리적 지도 안에 기꺼이 머무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 또한 저 세계에 머무르는 사람이다. 광주로의 여행은 마음에서, 즉 이와 같은 교감 안에서 완성된다. 정현주, 독립큐레이터 / 3월 16일 2017년 ———————————————-(1) M. 쉐이퍼, 『사운드스케이프』, 함명호 외 역 (충남 홍성군: 그물코, 2008), 14-15쪽 참조.(2) S. 나흐마노비치,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 이상원 역 (서울: 에코의 서재, 2008), 33쪽 참조. 전시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