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서문-우리: 『소년이 온다』를 읽다정현주, 전남대학교 철학과 학술연구교수 1. 「우리: 『소년이 온다』를 읽다」는 문학텍스트의 읽기를 방법론으로 삼는 포도나무아트스페이스의 두번째 기획이다. 안향희의 제안으로 2021년 「목소리 꽃을 피우다: 차학경의 유작, 『딕테』를 읽다」 전시가 차학경의 『딕테』(어문각, 2004)를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창비, 2014)를 5명의 아티스트, 기슬기, 신영희, 정승원, 안향희, 오은미가 읽는다. 한편 2023년의 전시 「소리 없는 목소리」에서도 김홍빈, 심혜정, 정기현은 오월어머니들이 『소년이 온다』의 제6장을 읽는 과정을 영상에 담아 설치했다. 두 전시는 처음부터 읽기를 통해 오월항쟁의 기억과 성찰, 애도의 지형을 형성하기 위해 함께 기획되었다. 때로 우리는 문학을 통해 현재의 해결되지 않은 시대적 문제를 환기하고 재인식한다. 읽기의 방법론은 사회적 문화적으로 공유된 문제를 현재적으로 촉발하지만 서사라는 경유지의 가상성 때문에 ‘사실’로서의 사건, 혹은 입증이라는 버거운 과제로부터 비켜서서 나 자신으로부터 세상에 대한 성찰과 변화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2.『소년이 온다』는 5월항쟁과 그 이후의 시공간에서 7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기억의 공동체에게 훼손되지 않아야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소설의 첫 문장에서 ‘너’라는 호명은 그 목소리를 자신의 것으로 전유하는 수신자가 마법처럼 그 서사 안으로 미끄러지도록 인도하는 계기다. 텍스트를 읽는 독자는 자신의 경험과 지각행위를 동기화하면서 뒤따른다. 문학을 차용하여 작가들은 자신의 매체를 통해 각자의 키워드를 배열한다. 이들의 성찰적 궤적은 다음과 같다. 기슬기 소설은 기슬기에게 ‘너’를 의식하게 만든다. 나와 간격을 둔 채 너는 불가피하게 내 안에서 ‘현전하는 존재’다. 사진의 흑과 백으로 분리된 화면에서 그 경계를 가로지르는 것은 누군가의 신체, 손이다. 이것은 한 사람일 수도 두 사람일 수도 있다. 혹은 두 사람 같은 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손과 손의 제스쳐는 친밀성과 폭력이라는 두 겹의 의미를 고스란히 포개면서 그 대립하는 감정을 분열적으로 노출시킨다. 기슬기의 질문이 ‘너’의 발견과 함께 포개진다. 과연 “우리는 어떤 존재이길래 폭력 아래에서도 개인이 타자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것일까?” 신영희 신영희는 “80년 5월의 광주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영리하게도 그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미지로 나타내는 일 자체가 그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대신 그는 자신의 경험 안에서 이상한 행위로 돌출되어 그가 지각할 수 있었던 타자의 고통을 형상화한다. 이를 5월의 광주와 연결함으로써 그의 영상은 남겨진 자의 애도로서 자신의 수용을 드러낸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잊지 않는 것”이다. 안향희 『소년이 온다』를 두 번째 읽기 텍스트로 제안했을 때, 안향희는 당시 도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던 어린 소녀였던 자신이 <고소미>를 사러 동네가게에 들렀다가 농장다리에서 목격한 학생들과 군의 팽팽한 대치상황을 말해주었다. 그의 드로잉은 텍스트를 플랫폼 삼아 한낮의 폭력에 맞섰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시각화한다. 동시에 이것은 80년 5월의 광주에서 살아남은 자로서 그가 목격한, 혹은 다행히 그와 자신의 가족을 피해간 한낮의 폭력을 되비춘다. 오은미 검정 칠판 위에 백묵으로 그려진 군상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고요한 부동성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은 프로젝트 빔에서 투사되어 살인, 자살, 사고를 반복해서 연기하는 인물들의 애니메이션이다. 역설적으로 유령들은 죽은 이들을 증언한다. 정승원 그는 소설의 이탤릭체에 주목한다. 한국어체계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이탤릭체는 마치 저자가 다른 층위의 의미를 전하려는 것처럼 보이고, 따라서 맥락을 되짚으면서 읽는 속도를 늦추게 만든다. 이 지연된 시간 안에서 정승원은 이탤릭체로부터 더듬어낸 그의 어릴 적 기억들을 탐색한다. 그 과정은 어떻게 자신이 소설의 서사와 전혀 겹치지 않는 시공간을 살았는지, 왜 ‘너’를 전혀 모르고 살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찾아 내면으로 떠나는 여정이고 고백이다. 3.다섯 명의 여성 아티스트는 5월항쟁을 직접 마주쳤던 세대부터 포스트 5.18세대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며, 광주에 나고 자란 이부터 거의 연고가 없는 이까지 저마다의 배경과 삶의 스펙트럼이 다르다. 그러나 전시를 하나로 엮는 키워드는 ‘애도’이다. 소설의 ‘너’를 매개로 아티스트들에게 애도와 연민의 감정은 자기경험 안의 타자에 주목하도록 움직이게 만들고 다시 구체적으로 그들과 나를 이해하려는 지점으로 확장하게 이끈다. 이 힘에 의지해서 아티스트들은 타자의 고통을 껴안으려는 발화와 표상 쪽으로 나아간다. 즉 비극에 대한 이들의 이해는 그와 같은 과거에 대해 현재의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는 행위로 이어진다. 안향희는 텍스트를 빌려 어지러운 선으로 한낮의 폭력과 비참한 죽음을 시각화한다. 기슬기와 신영희는 포스트 5.18세대로서 타자의 고통과 이로부터 관계에 대한 자신의 존재조건을 성찰한다. 오은미는 소설 속 ‘정대’처럼 유령을 구현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바로 앞에서 목격했던 죽음을 증언하고자 한다. 정승원은 ‘너’에 대해 무지했던 스스로에 대해 추적한다. 이 성찰적 상호연동의 궤적들로 인해 타이틀, 「우리: 『소년이 온다』를 읽다」는 비극을 돌아보는 아티스트들의 어떤 연대, 윤리적 기억의 공동체를 함의하게 된다. 그리고 기억과 통찰을 매개로 한 이와 같은 대화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변화 가능성을 다시 모색할 수 있다. 한강은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녀의 소설 속에서 그 질문은 나의 질문이 되었다. 묘하게도 이 질문은 다시 아티스트들의 질문이 되었고 스스로의 답변을 찾아 우리는 이번 전시를 꺼내놓는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현재적 성찰을 통해 다가올 미래를 꿈꿀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우리가 미래를 바라보는 한 항쟁의 정신은 끝나지 않았다. 가장 참혹한 기억을 희망 찬 기획으로 바꿀 책무를 이어가는 일은 다시 우리, 바로 윤리적 기억 공동체에게 있다. 2024년 5월6일 Introduction We: Reading “Human Acts” CHUNG Hyun Joo Research Professor of Philosophy, Chonnam National University 1.We: Reading “Human Acts” is the second project by Podonamu Artspace that uses the reading of literary texts as a method. In 2021, artist ANN Hyang Hee suggested the exhibition Voices Bloom: Reading Hak Kyung Cha’s “Dictee,” which focused on Cha’s book Dictee. This time, five artists—KI Seulki, SHIN Young Hee, JUNG Sung Won, ANN Hyang Hee, and OH Eun Mi—engage with Han Kang’s novel Human Acts. In the 2023 exhibition Silent Lament, artists KIM Hong Bin, SHIM Hye Jung, and JUNG Ki Hyun filmed a video of May Mothers (women whose family members were sacrificed during the May 18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or May Uprising in May 1980) reading Chapter 6 of Human Acts and created an installation with the video. These two exhibitions were planned together to create a space for memory, reflection, and mourning for the May Uprising through reading texts. Sometimes, we use literature to evoke and reawaken unresolved issues of our time. Reading can trigger socially and culturally shared issues in the present, while the fictionalization of narrative allows us to step back from the event as a “fact” or the daunting task of proving it. This helps us reflect on the world from our own perspective and explore the possibility of change. 2.Human Acts explores what values should remain intact for a community of memory through seven characters during and after the May Uprising. In the first sentence of the novel, the address “you” triggers the reader, who adopts the voice as their own, to slip into the narrative. The reader follows along, synchronizing their own experience with the story. The five artists draw from the story and arrange their own keywords through their mediums. Their reflective paths are as follows: KI SeulkiThe novel makes her conscious of “you.” “You” are inevitably “present” in me while I am distanced from you. In the black-and-white separations of the photograph, it is someone’sbody or hands that cross the boundary. This could be one person, two people, or one person like two people. The hands and their gestures embrace both intimacy and violence, exposing conflicting emotions. KI’s question revolves around the discovery of “you.” “Who are we that individuals are willing to make sacrifices for others, even under violence?” SHIN Young HeeShe “did not experience Gwangju in May ’80 in person.” She makes it clear that representing what happened in images is not possible for her. Instead, she uses strange acts within her own experience to embody the suffering of others. By linking this to Gwangju in May, SHIN’s film reveals her acceptance as a mourner for those left behind: the best she can do is “not to forget those who suffer.” ANN Hyang HeeWhen I suggested Human Acts as the second reading text, she told me about the tense confrontation between students and the military that she witnessed on the Nongjangdari Bridge as a young girl. Living not far from the former Jeollanam-do Government Office at the time, she had stopped by a mom-and-pop shop to buy Gosomi snacks. Her drawings use the text as a platform to visualize the story of those who confronted the violence. As a survivor of the May Gwangju, ANN recalls the daylight violence she witnessed, which fortunately did not harm her family. OH Eun MiThe figures drawn in white chalk on a blackboard do not move. Their silent immobility is contrasted by animated figures projected from a beam, repeatedly enacting murders, suicides, and accidents. Paradoxically, the ghosts testify to the dead. JUNG Seung WonShe notes the use of italics in the novel. Italics, rarely used in Korean literature, seem to convey another layer of meaning, slowing the reader down to recall the context while reading. In this delayed time, Jung explores her childhood memories, which she gleans from the italics. This process is a journey and a confession, searching for clues about how she lived in a time and space that does not overlap with the novel’s narrative and why she lived without knowing “you” at all. 3.The five female artists span a spectrum of generations, from those who lived through the May Uprising to the post-May Uprising generation. They come from different backgrounds and walks of life, from those born and raised in Gwangju to those with no connection to the city. However, the keyword uniting the exhibition is “mourning.” For the artists, theemotions of mourning and compassion, through the novel’s “you,” move them to pay attention to others in their own experiences, expanding to understand others and themselves concretely. With this power, the artists create works that attempt to embrace the pain of others: their understanding of tragedy leads to finding what they can do in the present about the past. ANN visualizes daylight violence and miserable deaths with dizzying lines. As post-May Uprising generations, KI and SHIN reflect on the suffering of others and their own existence. OH embodies ghosts, like Jungdae in the story, to testify to the death she witnessed. JUNG traces her own ignorance of “you.” These reflective interconnections suggest a certain solidarity, a community of ethical memory among artists reflecting on tragedy. In this dialogue, mediated by memory and insight, we can re-examine the possibility of changing the world.Writer Han Kang asks whether the present can help the past. That question in her novel has become mine. Interestingly, this question has also become the artists’ question. In search of our answers, we bring this exhibition. We soon discover that we can only dream of the future through our present reflection on the past. As long as we look to the future, the spirit of the resistence is not over. It is up to us, the ethical memory community, to continue the responsibility of transforming the most devastating memories into hopeful plans. May 6, 2024 전시 전경 우리 : 「소년이 온다」 를 읽다2024. 5. 10(금) - 7.13(토) / 수-일 11:00 - 08:00참여 작가: 기슬기, 신영희, 안향희, 오은미, 정승원 <우리 : 「소년이 온다」 를 읽다>는 문학텍스트의 읽기를 방법론으로 삼는 포도나무아트스페이스의 두번째 기획이다.이 전시에서 5명의 아티스트 기슬기, 신영희, 안향희, 오은미, 정승원이 한강의 「소년이 온다」 (창비, 2014)를 읽는다. 한편 2023년 전시 <소리 없는 목소리>에서도 김홍빈, 심혜정, 정기현은 오월 어머니들이 「소년이 온다」 의 제6장을 읽는 과정을 영상에 담았다. 읽기를 통해 5월항쟁의 기억과 성찰, 애도의 지형을 형성하고자 두 전시는 처음부터 함께 기획되었다. 5월 10일 금요일 저녁 6시 30분에 전시 오프닝행사 <갤러리 테이블>이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