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se Three Fingers, Global Artistic Solidarity for Democracy in Myanmar
“Raise Three Fingers”
미얀마의 “세 손가락 경례”는 2021년 2월1일 일어난 미얀마 군부 쿠테타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사용된다. 이 경례는 소설/영화 <헝거게임(Hunger Games)>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소설/영화에서 세 손가락을 높이 치켜드는 손짓은 전능한 폭군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에서 그 지배에 대항하여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연대를 표시한다. 이 제스처는 2014년 태국의 군사쿠데타에 시민들이 저항하면서 나타났고, 곧 인터넷 환경에서 성장한 새로운 세대들에 의해 온라인상에서 저항을 표시하는 밈으로 퍼져나갔다. 미얀마에서 세 손가락 제스처는 2월 쿠데타 직후 미얀마의 의료 종사자들이 처음 사용했으며, 젊은 시위자들이 군사 쿠데타에 반대하여 세손가락을 들기 시작해 이 경례는 미얀마 시민불복종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Z세대로 알려진 미얀마의 젊은 활동가들은 그들에게 익숙한 대중문화를 차용해 자신들의 투쟁을 인터넷 네트워크에 연결된 사람에게 알리고 공명하게 만드는 일에 능숙하다. 세손가락 경례는 태국과 홍콩, 미얀마에 이르기까지 반-쿠데타의 상징이면서 민주화운동을 위한 저항과 연대의 상징이 되었다.
<참조>
The Guardian 2월 8일자 기사,
“Three-finger salute: Hunger Games symbol adopted by Myanmar protesters,”
디지털 아트
미얀마의 11명 예술가의 협업작업
이 그림은 처음으로 예술적 연대가 시작한 협업 작품이다. 미얀마 쿠데타가 벌어진 이틀 후, 2021년 2월3일, Ae Chan Aung이 이끄는 11명의 아티스트 그룹이 페이스북에 이 쓰리 핑거스의 바다를 창작하는 과정을 생중계했다.
세손가락 경례는 저항과 예술에 있어서 항거의 상징이 되었다. 미얀마에서 태국, 홍콩에 이르기까지 밀크티 연맹에서 이 제스처는 민주주의를 위한 글로벌 연대, 폭정에 대한 저항, 자유를 위한 투쟁을 나타낸다.
이 그림은 현재 OpenSea에서 판매 중이다.
https://www.threefingers.org/
1)먼저,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각자 살고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온/오프라인 시위에 참여해주세요. 2)국민청원에 동참해주세요. 무의미해 보일 지라도 모든 시도 하나 하나가 중요해요. 3)미얀마 시민운동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계속 이야기를 나눠 주세요. 이슈의 인지도를 높이는 겁니다. 4)미얀마 군부에 물자를 공급하는 기업이나 정부 기관에 적극 항의하고 불매운동을 벌여주세요. 5) 미얀마에 도움이 되는 경제적, 정신적, 물질적 자원을 마련해주세요. 미얀마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에 기부할 수도 있고, 미얀마 내외에 활동가 피난처를 제공해주실 수도 있겠죠. 대도시가 아닌 지역에는 특히 지원이 늘 부족해요. 6)폭력과 상실로 고통을 겪는 미얀마 사람들의 정신건강 회복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도 필요합니다.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분들은 워크숍이나 자료 등을 제공해주세요. 미얀마어로 번역이 되면 좋겠죠.
https://ildaro.com/9030?fbclid=IwAR1Wq7joQiPeeR69bPw10kkxrzsV5l5itTtFv-HRR755sVnPIhVhTBg5Aqk
예술이 독재정권에서 살아남는 방법, 세 미얀마 예술가
메이 유(May Yu) , 번역: 정현주
지난 2월 1일 미얀마 군사쿠데타 이후, 영화제작자, 만화가, 화가, 시인 등 수십 명의 예술가들이 군부에 억류되어 있다. 쿠데타와 그 여파는 공공예술(public art)의 지형을 변화시켰다. 미얀마의 많은 예술 공동체의 많은 사람들이 지하에 숨도록 강제되었고, 한 때 개인적인 이유, 느긋이 쉬거나 치유의 수단으로 예술을 창작했던 다른 사람들은 국가 폭력과 박해에 노출된 결과로 더 많은 정치적 형태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사건들이 지역 사회를 통해 전해진 한기에도 불구하고, 미얀마의 예술가들이 독재 통치에 대한 저항의 방법으로 예술 형태를 사용하는 일은 낯설지 않다. 따라서 미얀마 군부가 독립적으로 제작된 예술을 항의와 위협의 한 형태로 보는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세 손가락을 들어올리는(RTF) 캠페인은 군사쿠데타와 창의적 사고와 표현에 대한 군부의 탄압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되었고 이제 전 세계의 예술가들은 세 손가락 경례에 대한 그들의 해석을 제안했다. 세손가락 경례는 책과 영화로 만들어진 <헝거게임>에서 처음 나타났지만, 동남아시아 국가의 활동가들이 이 경례를 자국민에게 기본권과 보호를 제공하지 못하는 독재 정부에 저항하는 연대의 표시로 받아들였다.
여기서는 쿠데타로 인해 자신의 삶과 일이 획기적으로 변한 3명의 미얀마 RTF 창립자들과 예술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예술이 독재정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니안 키알(Nyan Kyal)
니안 키알은 Pencell Animation Studio의 공동 창립자이자 감독이다. 수상작인 첫 번째 영화
<학교에 가고 싶어>(I Wanna Go to School)가 2015년에 개봉되었다. 두 번째 영화 <원하지 않는 내 인생>(My Life I Don’t Want)이 2016년에 개봉되었다. 그는 Raise Three Fingers와 Art for Freedom (MM)의 창립자 중 한 사람이다. “쿠데타 소식을 듣고 곧바로 예술을 통해 제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저는 저의 예술로 운동에 기여했고, 제 예술을 가지고 사람들을 지지했고, 제 예술을 통해 제 생각을 공유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일을 온라인과 인쇄된 종이, 벽과 도로, 사진, 비디오 등 모든 매체에서 합니다. 군사정권이 우리를 막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이러한 일을 합니다. 예술은 우리 마음 속에 존재합니다. 우리의 창작물은 감정과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예술은 미얀마 봄의 혁명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예술가들은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군사정권은 우리의 일을 불법적으로 파괴하거나 억류하거나 심지어 죽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도망치고 숨어야합니다. 우리는 폭압적 군사정권의 고문을 받지 않고 계속 창작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합니다. 대부분의 예술가는 실명은 말할 것도 없고 필명조차도 자신의 예술작품에 표기할 수 없습니다. 익명이어야 합니다. 나는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한 505a조 위반 혐의로 불법적인 체포 영장을 발부 받았습니다. 그들의 폭력이 나를 쫓고 있습니다. 숨어 있지만 전혀 안전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술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한들, 예술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항상 존재합니다.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우는 데 사용되는 예술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 혁명의 모든 예술가들이 계속 창작하고, 정의가 이길 때까지 소프트 파워를 사용하여 계속 싸울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정의를 위해 싸우고 따뜻한 관심을 공유해준 지역과 세계의 모든 예술가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노벨 아웅(Nobel Aung)
노벨 아웅은 2017년 형제인 니안 키알과 함께 설립한 Pencell Animation Studio의 미술감독이다. 그는 니안 카알과 함께 미얀마 예술과 영화 산업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 미얀마 최초의 세트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를 감독했다. 그는 Raise Three Fingers와 Art for Freedom (MM)의 설립자 가운데 한 명이다.
“2월 1일 전날 밤 나는 잠을 자지 않았다. 나는 새 만화책 시리즈를 만드는 중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내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확인했다. 난 충격을 받았다. 내 꿈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군부독재정권을 경험했지만, 지난 3~4년 동안은 삶의 다양한 분야가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의 꿈은 실현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쿠데타는 우리에게서 그 꿈을 빼앗았다. 우리가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놔둘 거라고 그대는 생각하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고 있었다. "왜 그들은 그랬을까? 그들은 지금이 2021년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그들은 이 세대의 힘을 과소평가하는가?”
예술이 독재정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다. 자유롭지 않은 조건에서 제작된 예술은 정말 예술인가? 아니면 예술가들은 정권이 허용하는 (또는 선전 활동에 기여하는) 예술을 생산하여 삶에서 앞서 나갈 수있게 될까? 만약 우리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는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 군사정권의 세계관을 확인하고, 국가, 민족, 종교 등에 대한 퇴행적 사상을 강화하는 예술이 제작될 것이다.
미얀마 군사정권의 암울한 시기 동안, 많은 미얀마의 위대한 만화와 만화가들은 출판사는 물론, 군사정권이 그들을 체포하거나 출판허가를 취소할 것을 두려워하며 자기 검열을 해왔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이제 군부가 우리가 세상에 진실을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일을 끝낼 때다. 세상은 우리의 말을 들었고, 우리는 계속 말할 것이다.“
니이 모우(Nyi Maw)
니이 모우는 12년 전에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프리랜서로 활동한 그는 양곤의 한 프로덕션 하우스에서 광고 및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일하고 있었다.
“모든 독재 정권은 국민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를 원한다. 그 통제에 가기 위해, 그들은 정보, 아이디어 그리고 지식을 제한한다. 그들은 교육을 낮추고, 문화를 억압하며, 자기표현의 수단을 검열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행의 시작을 이끈 미얀마에서 자라난 모든 젊은이들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모든 곳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다.
독재가 예술에 하는 일은 단지 여러분이 쓰고, 그리고, 랩을 하거나 영화를 만드는 일을 제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훨씬 더 깊숙히 들어간다. 그것은 어떤 생각이나 아이디어까지도 뿌리내리기 전에 익사시킨다. 끊임없는 두려움과 감시 아래 살게 되면 자기 검열은 제2의 천성이 된다.
여기서 예술은 죽는다. 당신은 위험을 줄인다. 당신은 주어진 한도 내에서만 일한다. 당신은 이미 문화부가 당신의 스크립트에 빨간 선을 그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기도 전에 폐기한다. 왜 그렇게 해야 하나? 이러한 일을 극심한 빈곤과 자원에 대한 제한된 접근과 결합하면 예술이 번성할 여지가 많지 않다.
예술의 영역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내 열정과 삶, 그리고 미래가 두렵다. 우리가 억압 아래 오래 살수록, 우리는 그것에 무감각해지고 그것을 보통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두렵다. 언젠가는 그들이 우리의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총조차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통제는 단지 삶의 일부가 될 뿐이다. 내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형태의 예술이 불굴의 용기와 회복력의 결과로 계속해서 나타나기를 희망한다. 고난과 투쟁에서 태어난 예술에는 큰 장점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술의 아름다움에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결코 일반적 규준이 아니다.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 즉 사상의 자유를 요구한다. 그리고 우리는 더 적은 것에 안주하지 않을 것이다.”
5월 21일, 2021년.
무기로서의 예술, Raise Three Fingers
메이 유(May Yu) , 번역: 정현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로 집권한 지 2주 후, 한때 유명했던 배트맨과 로빈의 밈을 풍자한 밈이 돌기 시작했다. 두 그림 중 첫 번째에서 배트맨은 미얀마 군의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의 빰을 때리는 붓다로 대체된다. 쿠데타 지도자는 “우리 민족과 종교와 번영을 수호하자"라고 외치고 있다. 붇다가 “닥치세요!”라고 말하며 손으로 민 아웅 흘라잉의 얼굴을 친다. 두 번째 그림에서 붓다는 가면을 쓴 여성 시위자로 대체된다. "국가기밀, 사살명령, 체포영장!” 민 아웅 흘라잉이 외친다. “개수작 마라!” 시위자가 응답한다.
쿨(Kool)은 미얀마 군대가 2월 1일 민간정부를 전복시키고 집권하자마자 밈을 만들었다. 33세의 일러스트레이터는 양곤에서 태어나 2011년까지 유지되었던 SPDC(State Peace and Development Council) 시대에 자랐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군부 통치 하의 삶의 불안과 폭력을 이해했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미얀마 군부 지배의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오랫동안 일러스트레이션과 유머를 사용해왔다. 쿨은 저명한 풍자 만화가와 예술가의 만화책을 읽으며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이들 중 한 사람은 예술적 재능과 정치적 신념으로 널리 존경받는 우 페 떼인(U Pe Thein)이었다. 그의 작품은 1988년, 군부가 약 3,000명의 시위대를 살해한 대규모 봉기 이후에 금지되었다. 쿨은 우 페 떼인을 존경했다. 우 페 떼인의 정치적 신념과 사람들에 봉사하려는 갈증이 쿨의 작품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초기 쿨의 정치적 의식은 행동주의를 통해 표현됐다. 그러나 쿨에게 1990년대와 2000년대는 분노의 시기였다. “과거에는 항상 거리에 있었는데 군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군부 재산을 파괴하고 싶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2015년 미얀마가 사이비 시민정권의 통치를 받자 국유 재산에 피해를 입히려는 그녀의 욕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낙관주의가 커졌다. 그러나 미얀마의 들뜬 시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다시 군부 통치가 도래하자마자 거리로 나왔다.”
쿠데타 이후 30여 명의 예술가가 체포 구금되었다. 경찰과 군인들이 시위대에 발포한 후로 다른 예술가들은 사망했다. 쿠데타의 결과로 미얀마의 인권은 급속하게 인도주의적 위기에 빠졌으며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바꾸게 되었다. ”
사는 일이 먼저다.”라고 쿨은 말한다. "체포되지 않는 것이 두 번째다.” 군사정권이 정기적으로 언론인과 예술가, 유명인을 주요 신문에 수배자 명단으로 게시하면서 쿨은 이제 위협을 매우 밀접하게 느끼고 있다. 그녀는 일러스트레이터, 뮤지션 등의 광범위한 예술가 공동체 일원으로, 어떤 정치적 운동이든 끊임없는 폭력에 직면했을 때 에너지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할 것임을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이 진압군에 의해 사살되거나 체포, 폭행을 당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누가 그렇게 되었는지 알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시위자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군부가 희망하는 것도 시민 불복종 운동을 복종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쿨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친구들이 경찰과 군대에 의해 구타당하고 성폭행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폭력은 그녀의 여러 동료가 자신의 대중적 인지도를 낮추는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 그렇기에 시민불복종운동의 상승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당연하다.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흐텟(Htet), 음악가·예술가>
음악가이자 예술가인 흐텟(Htet)은 시민불복종운동의 반항 정신을 고취하고 유지하기 위해 직접 작품을 제작한다. “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Freedom from Fear, 1990년대 아웅산 수치가 유명하게 만든 문구)라는 제목의 작품을 만들 때 다른 사람들이 가슴을 내밀고 턱을 위로 올려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격려하고 싶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잔인한 단속과 체포, 폭력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예술가들은 그들이 가장 잘 아는 무기를 계속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흐텟은 “나는 달리기를 잘하지 못한다. 때문에 폭력적 진압에 마주하는 대신 시위 예술을 선택한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저항음악의 악기 버전을 만들었고, 그녀가 판매한 여러 작품의 수익금은 시위대를 지원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것은 내가 예술가로서 군대에 저항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목숨을 바쳤는데 내가 왜 포기해야하는가?”
쿨에게 있어 위협, 불안, 두려움—이러한 것들이 저항운동의 정신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특히 시위대가 퇴각하고 군부가 나라 전체를 장악하는 일이 벌어질 것을 고려하면 특히 그렇다. 그 시나리오에서 삶을 제한하는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은 일상생활의 일부가 될 것이다.
쿨은 여전히 변화를 이끄는 예술의 가능성을 믿는다. “나는 시민불복종운동이 다른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미얀마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거나 영감을 줄 수 있는 핵심요소 중 하나다. 행진하고 슬로건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는 일이 나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용감한 사람들을 위해 지치지 않고 예술을 창작할 것이다.”
쿨의 작품은 미얀마의 예술가와 창작자들이 글로벌 예술 커뮤니티를 하나로 모으고 군사 쿠데타로 인한 인권과 인도주의적 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설립한 캠페인 허브인 Raise Three Fingers에 소개된 작품 중 하나다.
쿨의 작업을 보려면 Behance를 참조하라.
“모든 사람에게 권위가 있을 때에만 공정한 게임이다.”
-만화가의 캐롤 아이작스가 미얀마 권사정권을 비웃다.
6월 20일, 2021년 캐롤 아이작스, 번역: 정현주
2월 미얀마 쿠데타 직후에 미얀마 만화가 협회 회원들은 군부지배에 항거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들이 그린 세 손가락 경례 이미지는 런던에 거주하는 초현실 맥코이(The Surreal McCoy)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만화가이자 뮤지션인 캐롤 아이작스(Carol Isaacs)의 눈에 띄었다. 그녀는 미얀마와 가족관계에 있다. 영국 프로 만화가 협회(Professional Cartoonists’ Organization)의 일원으로서 그녀는 국제적 만화가들이 미얀마의 시위대들과의 연대를 증명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고, Three Fingers 캠페인이 탄생했다. 최근 우리는 캐롤과 권위주의 통치에 반대하는 운동에서 유머와 풍자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다. 캐롤은 20년 넘게 회고록, 풍자 등의 형태로 만화를 출판해 왔으며 2020년에 출간된 그래픽 소설, 『바그다드의 늑대, 상실의 회고록』The Wolf of Baghdad : Memoir of a Lost를 비롯한 여러 작품의 저자이거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당신은 미얀마와 가족 관계가 있습니다. 그곳의 상황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특히 시인과 작가, 예술 분야의 사람들이 연행되고 살해당하는 일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제가 마지막으로 미얀마를 방문한 것은 팬데믹이 터지기 직전인 1년 전이었습니다. 나는 분위기가 낙관적이라고 느꼈어요. 사람들은 미래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쿠데타가 잔인하게 모든 것을 종식시켰고, 하룻밤 사이에 너무 많은 꿈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독하게 슬펐습니다.
보다 몇 년 전에 이루어졌던 방문에서 나는 운 좋게 유명한 베테랑 카투니스트인 APK를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미얀마에서 2012년에 직접 검열이 끝났다고는 하지만 그는 여전히 조심스러웠습니다. 지난 수년간의 군부 통치를 겪으면서 그는 신중하게 걸어가야 할 필요성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그는 젊은 예술가들이 그들의 직업으로 괜찮은 생활을 할 수 없어 결국 나라를 떠날 것이라고 더 걱정했습니다.
2021년에 이르러 동료 만화가 두 명이 자신의 삶을 두려워하면서 가족과 함께 미얀마를 떠나야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탈출이었습니다. 놀랍게도 망명 중에 있든 협박을 당하든 그들의 창의력은 전혀 감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미얀마 사람들의 회복력과 용기는 놀랍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최근에 몇몇 미얀마 예술가들에게 예술이 독재정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한 예술가는 독재정권은 단지 당신이 글을 쓰거나 그릴 수 있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익사시킨다"고 대답했습니다. 당신이라면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쿠데타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작업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어떤 예술가들은 새로운 원동력을 발견하여 그들의 현재 상황을 반영하는 작품을 만듭니다. 그리고 아마도 어떤 생각들은 익사하지 않고 때가 될 때까지 가사상태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시인 코 켓 티(Ko Khet Thi)는 "당신은 우리가 씨앗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를 땅속에 묻으려 무던히 애를 쓴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는 5월에 군부에 의해 살해되었는데, 군부에 의해 살해된 수많은 시인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죽기 얼마 전에 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그들은 시인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폐가 강한 반대로 가득 차서 타 버린 책의 연기마저 더 이상 폐를 질식시킬 수 없을 때였다.’
아티스트에 대한 공격에 놀랐나요? 이런 종류의 폭력은 군사 정권을 위해 무엇을 하려는 걸까요? 나는 이 나라에서 정치적 시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인들은 계속해서 저항 운동의 정치적 슬로건을 제공하기 때문에 정권에 의해 위협으로 간주되고 체포와 투옥, 살인으로 그들을 침묵시키려 합니다. 미얀마에는 오랜 만화 전통이 있으며, 오로지 낱말과 펜만 있는 예술가에 가해지는 폭력은 특히 잔인하고 비인간적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세계인권선언 제19조에 명시되어있는 기본적 인권이며 건전한 민주사회의 척도입니다. 미얀마군(Tatmadaw)는 모든 전체주의 정권이 하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민주사회를 막고 부정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는 유머의 파괴적인 특성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는 미얀마 풍자가, 만화가 등이 과거에 강력한 효과를 내기 위해 사용했던 것입니다. 특히 유머를 전달하는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만화가 정치적 행동의 도구로서 갖는 가치가 무엇인지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위대한 만화의 첫 번째 규칙은 항상 아래가 아닌 위로 펀치를 가하는 것입니다. 만화는 무력하고 취약한 사람들이 아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목표로 합니다. 이는 풍자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권위가 있을 때에만 공정한 게임(Everyone in authority is fair game)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상적으로 미얀마 군대와 그들의 지지자들은 만화가와 작가 모두에 의해 공개적인 조롱과 경멸을 당합니다. 특히 만화는 낱말에 가외의 시각적 차원을 추가하여 매우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유머는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위로를 주어야한다’는 오랜 생각은 잔인한 정권 아래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탈출과 구호를 제공하는 데에도 사용됩니다. 미국 작가 도로시 파커(Dorothy Parker)는 심지어 조롱이 무기가 아닌 방패로, 즉 권력자들이 배치한 도구가 아니라 피해자를 위한 방어 메커니즘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느 쪽이 되었든, 군사 정권은 매우 얇은 피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어떤 종류의 조롱이나 풍자로도 쉽게 화를 냅니다. 특히 만화가들은 그런 일을 잘합니다. 시위행진에 사용되는 플랫카드와 현수막의 모든 이미지를 보세요. 소셜미디어도 조롱과 풍자로 넘쳐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놀려대는 일이 정권을 무너뜨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일이 어떤 수준에서 누구를 위해 효과적 일 수 있습니까?
조소는 군사정권의 행동에 관심을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정치 이론가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웃음은 권위의 가장 큰 적이며 이를 훼손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미얀마의 풍자가들은 또한 자신의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조소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강력합니다.
저는 몇 년 전에 여성들이 전 세계 미얀마 대사관에 자신의 속옷을 게시하여, 여성의 속옷에 가까워지면 권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장군의 미신을 이용하려했던 캠페인이 시작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사람들이 풍자에 매우 소중한가요?
https://kite-tales.org/en/article/resistance-diary-reflections-womens-place-myanmar
확실히 최근 미얀마에서 나온 가장 강력한 이미지 중 일부는 군사적 접근을 방해하기 위해 도로를 가로질러 늘어선 여성의 일상적인 htamein(치마) 대열입니다. 여성의 옷과 속옷이 여기에 가까이 접근하는 모든 남성에게 불운을 가져다주고 ‘hpone’(남성적 우월성)을 잃게 만든다는 오래된 미얀마 전통이 있습니다. 낱말 '우리의 승리, 우리의 치마(htamein)’가 행진대열의 현수막에서 나타나 여성을 모욕하는 미신 자체를 방어 전술로 사용하는 일을 찬양합니다.
플래시 이미지와 상징의 사용은 특히 아시아에서 반정부 시위운동을 동원하는 데 점점 더 중요해졌습니다. 저는 세 손가락 경례를 예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징의 힘은 무엇입니까? https://www.bbc.com/news/world-asia-55963895
세 손가락 경례는 단순함 때문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결국에는 누구나 이 경례를 할 수 있으며 말없이 지지를 표시할 수 있는 쉬운 방법입니다. 동남아시아의 민주주의 운동에 의해 이 경례는 반 권위주의적 메시지와 연대의 상징으로 차용되어 소셜미디어 어디에서나 모습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젊은 미얀마 활동가들은 이를 사용하여 쿠데타에 대한 자신의 저항을 전달하고 그들의 역경을 국제적 관객들과 공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Raise Three Fingers 캠페인을 위해 그 상징이 선택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쿠데타 직후에 양곤 거리에서 시위하는 미얀마 만화가 협회의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 손가락으로 경례하는 만화 캐릭터가 있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동료들에게 연대와 지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일한 경례를 하는 자기 모습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영국 프로 만화가 협회 회원들에게 #threefingers 소셜 미디어 캠페인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일이 미얀마의 Raise Three Fingers 팀의 관심을 끌었고 그 이후로 계속 협력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