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개의 눈
[인터뷰] 안세홍
1. 안녕하세요 안세홍 선생님. 작가로서 혹은 활동가로서 선생님과 그 활동을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아시아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증언과 사진을 기록하고 있는 안세홍입니다. 저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전시와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겹겹프로젝트> 비영리 공익단체를 운영하고 있고요.
2. 안세홍 선생님께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전시를 활발하게 하고 있고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하신 것으로 압니다. 어떤 경험이나 계기로 활동가/사진작가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무엇이 선생님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지금까지도 그 일을 이어오게 만들었나요?
중고등학교 시절에 사진이 좋아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장애인의 인권이나 통일 등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1996년 <나눔의 집>에서 처음 피해자를 만나면서 할머니들과 인연이 시작했고, 2001년부터는 국내 피해자뿐만 아니라 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피해자들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이 문제를 쫓아 기록하면 할수록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문제라는 걸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중국 등 다른 나라 피해자들을 찾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피해자를 만나면서 그분들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함께 하고자 하는 일을 찾다가 제가 잘 하는 사진으로 기록하고 알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일본군 성노예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고 시작을 했지만 한 분 두 분 계속 만날수록 보이지 않던 퍼즐이 하나둘씩 맞추어 지면서 일본군 성노예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3. 선생님께서는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오랜 시간 할머니들을 사진에 담고 기록해 오셨고 이를 위해 <겹겹 프로젝트>를 진행하셨습니다. ‘겹겹/重重’은 불교 화엄교학의 법계연기(法界緣起)의 ‘중중무진(重重無盡)’에서 가져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간단히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처음 시작했을 때 기대하셨던 점은 무엇이었고 지금은 어떤 점에 주목하시나요? 그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겹겹의 제목은 피해자의 깊게 패인 주름에서 가져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 남겨진 조선인의 경우 단순히 과거 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후의 삶에서도 가슴 속에 아픔이 쌓이고 싸여서 큰 한이 되었다는 의미를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2012년 일본 도쿄에서 첫 전시를 준비하면서 도쿄 뿐만 아니라 오사카, 삿뽀로 등 일본 곳곳의 전시를 통해 일본의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겹겹 프로젝트로 발전시켜서 단체를 만들고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본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어요. 게다가 우익들의 잘못된 정보로 인해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왜곡되어 있었고요. 그래서 사진 예술을 통해서 무관심을 관심으로 바꾸고 일본에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인식하고 깊이 생각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전시나 강연을 통해서 깊은 감동을 받은 관객들이 직접적으로 피해자들을 생각하고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 곳곳에서 현지인의 자발적인 지원으로 전시를 이어 나갈수 있었고, 그들과 함께 중국이나 아시아의 다른 피해자들의 집을 고치고 의료복지 지원을 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일본에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 분들이 고령으로 죽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분들의 기록들을 남기고 공식화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4. 사실 사진이란 피사체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물성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종적으로는 사진이 타자, 즉 관객과 조우하고요. 이번에 전시하는 선생님 사진들은 드라마틱한 구도와 색감이 특징이라고 여겨집니다.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인 할머니들의 어떤 삶과 모습을 담으려고 주의하시나요?
저는 사진을 찍는다는 생각보다 피해자를 만난다는 생각으로 아시아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과거의 일이지만 아직까지도 피해자들의 가슴 속에는 고통이 살아있습니다. 그러한 고통이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표출되는지를 사진에 담고 싶었습니다.
5. 전시 <여섯 개의 눈>의 키워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상’입니다. 우리는 동네 빵집에 들러 아침에 커피와 함께 먹을 빵을 사요.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이런 일을 우리는 일상이라고 부릅니다. 일상이란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하루고 때로 지루하다고도 여겨지죠. 이런 당연한 ‘일상’이 태평양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했어요. 특히 위안부로 복무했던 대다수의 분들은 고향에 돌아오기를 포기했고요. 그들의 파괴된 일상 자체가 그 이전으로는 거의 회복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일상’이라는 키워드는 역설적으로 일상의 중요성을 함축할 수밖에 없는데요. 선생님은 이번 전시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싶으신가요?
피해자들의 나이, 국가, 기간, 동원 방식 등 피해 사례들은 각각 다릅니다. 또한 그들이 가진 고통의 크기를 우리가 다 가늠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으로서 그들의 자격은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았음을 저는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6. 저는 이번 전시가 위안부할머니의 일상을 다루지만 한편으로는 이 일에 오랫동안 헌신한 선생님의 삶과 여정을 되비추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시에서는 이 두 가지 측면이 일치해서 드러나야만 한다고 봅니다.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사진 작업에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가장 만족스러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어려웠던 점이라면 피해자들을 찾고,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험난했습니다. 낯선 외국인 남자에게 피해사실을 이야기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그들이 이야기를 할 때까지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기다려야 했습니다. 다른 어려움은 그들을 기록하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한국 정부는 아시아 피해자의 기록에 대해 외면했고, 일본과 한국에 후원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모든 비용을 충당할 수 없어서 막대한 사비를 들여 기록해야 했습니다.
만족이란 표현을 사용하기에는 불충분하지만, 사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공감하고 함께 나서 주는 것만으로도 큰 고마움을 느낍니다.